막걸리의 친구들
막걸리는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 동안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벗과 같은 술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친구 막걸리에는 또 다른 오랜 친구들이 있다고 합니다. 막걸리와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오랜 단짝인 네 친구를 소개해 봅니다.
첫 번째 친구 노동
막걸리는 노동의 친구입니다. 옛날부터 막걸리의 또 다른 이름은 농주(農酒)였습니다. 조선 시대 금주령에서도 종종 농사일을 위한 막걸리가 제외될 정도로, 막걸리는 힘든 농사일에 빠질 수 없는 술이었습니다.
[대한뉴스 367호]
[안내원 김영희씨(1992년)]
농업사회에서 점차 도시화 공업화 사회로 접어들었지만,
막걸리는 여전히 노동의 친구였습니다.
건축 현장 등의 힘든 노동 현장에서는 점심과 함께 곁들이는 막걸리는
힘든 노동의 시름을 잠시나마 덜어주는 귀중한 존재였습니다.
[영화 ‘골목안 풍경’(1962년) 중 퇴근길 대폿집]
도시의 사무직 노동자들에게도 막걸리는 친구였습니다. 퇴근길, 동료들과 함께 대폿집에서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막걸리는 노동의 현장 속에서 우리와 같이하거나, 힘든 노동 후 우리의 몸과 마음을 위로해준 첫 번째 친구입니다.
두 번째 친구 노래
사람 몸에 술이 들어가면 여러 가지 감정의 기복이 나타납니다. 술을 마시면 긴장이 풀리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가장 큰 우리 몸의 변화일 것입니다. 이럴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노래입니다. 음주(飮酒)와 가무(歌舞)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영화 ‘서울의 지붕 밑’(1961년) 중 “꿈속의 사랑”]
꿈속의 사랑
1960~70년대 영화를 보면 대폿집이나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막걸리와 노래는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1961년 영화 <서울의 지붕 밑> 중에는 지금은 작고하신 김희갑 씨가 가요 ‘꿈속의 사랑’을 막걸리에 취해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술과 노래에 취해 흥취를 돋우던 중 같이 술 마시던 친구들은 시발택시를 타고 자리를 떠버립니다.
김희갑 씨의 흥취를 저버리는 친구들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자우림 ‘꿈속의 사랑’ (MBCkpop 채널 제공)]
대폿집에서 막걸리의 친구가 되었던 노래 ‘꿈속의 사랑’은 1940년대 후반 중국에서 발표된 곡입니다.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1955년 현인 씨가 우리말 가사를 붙여서 처음으로 발표했습니다. 이후 후배 가수들에 의해 여러 번 리메이크되었습니다.
재즈스타일로 편곡된 자우림의 노래로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현인 골든 힛트 음반 (지름 30 / 1972년)]
현인 골든 힛트 가요사 음반
가수 현인의 대표곡을 모은 LP 음반.
아세아 레코드에서 발매.
꿈속의 사랑이 수록된 음반입니다.
가수 현인은 독특한 창법으로 유명한 원로 트로트 가수입니다.
[영화 ‘메밀꽃 필 무렵’(1967년) 중 주막집 아리랑]
아리랑과 막걸리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긴 민요 아리랑은 막걸리의 가장 친한 노래 친구였습니다. 이효석의 장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1967년 영화화한 작품에는 배우 김희갑 씨가 주막에서 부르는 ‘아리랑’이 나옵니다. 장날 일을 마치고 저녁 무렵 주막에 모인 장돌뱅이들은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애환을 나눕니다. 막걸리 한 사발에 취기가 오르자 어김없이 나오는 노래 ‘아리랑’, 막걸리와 아리랑은 정말 잘 어울리는 친구였습니다.
[영화 ‘구름은 흘러도’(1959) 중 대폿집 아리랑]
아리랑은 광복 이후 대폿집에서도 불렸습니다. 1959년에 나온 영화 ‘구름은 흘러도’는 탄광촌에 살았던 가난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에는 광부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찾았던 대폿집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우리 민요 ‘아리랑’ 가락이 나옵니다.

[백년설, 번지없는 주막 음반]
노래가 선택한 친구,
막걸리와 주막
노래가 막걸리와 주막을 친구로 불러들이기도 했습니다. 노래의 가장 좋은 소재가 되었던 것이 술과 술집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유명한 노래가 1938년에 발표된 백년설 씨의 ‘번지없는 주막’입니다.
이후에도 막걸리와 술집은 유행가요의 대표적인 소재였습니다. 최근에는 다시 트로트 가요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강진, 막걸리 한잔]
막걸리 한잔
요즘 크게 유행하고 있는 영탁의 ‘막걸리 한잔’입니다.
본래 이 노래는 나훈아의 ‘땡벌’을 리메이크해서 유명한 가수 강진의 노래입니다.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막걸리 한잔에 우리의 가정사가 담긴 노래로 가볍게만 들을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막걸리 한잔, 노래 한잔에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윤종신, 막걸리나(Mnet 제공)]
[국순당 생막걸리 광고]
이제 좀 더 젊은 층에서 듣는 노래 가운데 막걸리를 찾아보겠습니다.
가수 윤종신 씨는 2010년에 국순당 생막걸리의 광고 모델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막걸리나’라는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윤종신 씨가 부른 원곡도 유명하지만 ‘벚꽃엔딩’, ‘여수밤바다’ 등으로 유명한
버스커버스커가 Mnet의 슈퍼스타K에서 경연곡으로 불러서 더 유명해진 노래입니다.
그 외에도 양희은 씨가 부른 신나는 노래인 ‘막걸리’도 있습니다.
민중가수로 알려진 가수 안치환도 ‘막걸리1 막걸리2’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막걸리는 노래의 친구요, 노래는 막걸리의 두 번째 친구입니다.
세 번째 친구 막걸리에 어울리는 음식들
우리나라처럼 술을 마실 때 안주를 많이 먹는 나라도 많지 않다고 합니다.
서구 유럽과 미국에서는 한 번에 마시는 술의 양도 적고 안주도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쩌면 술보다는 안주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막걸리에도 잘 어울리는 안주들이 있습니다. 막걸리 안주들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막걸리의 세 번째 친구입니다.
‘쏘맥’은 알아도 ‘막사’는 모른다?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어서 마시는 ‘막사’는 버번 위스키와 콜라를 섞어서 마시는 버번콕과 유사한 음료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타주신 막사를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은 막사를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막걸리를 무척 좋아했던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 한국음식문화 한식문화사전]
빈대떡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여러 가지 안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지금도 민속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는 해물파전, 동태전 같은 전류를 안주 삼아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것인데 1960~70년대 대폿집에서는 빈대떡이 단골메뉴였습니다.
빈대떡은 맷돌로 간 녹두에 고기, 숙주 등의 야채를 넣어서 부친 전입니다.
빈대떡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음식으로 17세기 중반 안동 장씨가 지은『음식디미방』이라는 조리서부터 등장합니다.
지금은 빈대떡보다는 일반적으로 녹두전이라고 불리는데, 서울 광장시장이 유명합니다.
1960~70년대의 영화에도 빈대떡은 막걸리와 함께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대폿집에 붙은 차림표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빈대떡입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유행가 ‘빈대떡 신사’에도 등장합니다.
사치스러운 요릿집 가지 말고 집에서 빈대떡 부쳐서 술 한잔하라는 내용입니다.
빈대떡은 가장 익숙하고 흔한 막걸리 안줏거리였습니다.

[규합총서(閨閤叢書) / 가로 20 세로 26 / 1809년 필사본]
규합총서(閨閤叢書)
1809년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 1759-1824)가 지은 순한글 조리서. 빙자떡(빈대떡)을 만드는 방법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 빈대떡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조리서는 17세기 중반 안동 장씨가 지은『음식디미방』입니다.
1960~70년대 대폿집의 차림표를 통해서 본 막걸리 안주들
삼겹살같이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중 음식도 겨우 90년대 초중반부터 일반적이었다고 하니 생각보다 그 역사가 길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1960년대 영화 등에서 나오는 대폿집의 차림표와 음주 장면을 통해서 그 시절에는 어떤 막걸리 안주를 먹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대폿집 메뉴표
대폿집에는 여러 가지 음식 메뉴를 종이에 써서 붙였습니다.
메뉴 종이에는 가격이 쓰여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 대폿집에서 빠질 수 없는 메뉴는 역시 앞에서 언급한 빈대떡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돼지갈비, 국밥, 생굴, 감자국, 냄비우동, 매운탕, 문어회, 북어찌개, 참새구이, 닭내장,
꿩구이, 굴과 전복, 고등어구이(고갈비) 등이 있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자몽이님 블로그]
참새구이
이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안줏거리는 단연 참새구이입니다.
당시 풍문으로는 참새구이의 재료가 참새가 아니라 병아리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참새를 잡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가격도 그리 싸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참새구이를 파는 요릿집들이 있습니다.
참새를 통째로 구워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조금 거부감이 들지만 많은 마니아층을 보유한 음식이라고 합니다.
1970년대 대폿집에서는 막걸리와 함께 먹는 인기 안주였다고 합니다.
참새구이 말고 꿩구이도 있었는데, 지금은 맛보기 힘든 진귀한 요리가 되었습니다.
[영화 ‘오부자’(1969) 중 고갈비와 막걸리]
고갈비
지금은 흔히 고갈비라고 하면 그냥 불에 구워 익힌 고등어를 가리킵니다.
서울에서는 종로 낙원상가의 고갈비집이 유명하고, 부산의 광복동 고갈비 골목은 전국적인 명소로 꼽힙니다.
하지만 1960~70년대의 고갈비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흡사 지금의 삼겹살이나 돼지갈비처럼 술자리 식탁에서 손님이 직접 불에 구워서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고등어의 ‘고’자에 돼지갈비처럼 직접 불에 구워서 먹는다는 의미가 더해져 고갈비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추정됩니다.
1969년에 개봉한 영화 ‘오부자’에는 대폿집에서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불판 테이블에 손님이 직접 고등어를 연탄불에 구워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직접 구워서 먹던 고갈비는 아마도 굽기가 번거롭고 생선 냄새와 연기 문제로
점차 주방에서 구워서 나오는 식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고갈비에서 파생된 것으로는 이갈비가 있습니다. 이갈비의 ‘이’자는 임연수어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지금은 없어진 종로 인사동의 이갈비집이 유명했습니다.
[문화영화 ‘나룻배’ 중 사발술과 김치안주]
김치 깍두기와 두부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는 가난한 무명 시절 변변한 안줏거리가 없어서 막걸리에 김치만 먹었다는 인터뷰를 남긴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가난했던 그 시절 막걸리는 한 사발씩 팔기도 했는데, 이때 안주로 제공되던 것이 김치입니다. 냉장 시설도 변변하지 않던 그 시절, 눅눅하고 텁텁한 막걸리와 푹 익은 묵은 김치는 오늘날 기준으로는 너무 빈약한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두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인기 있었던 또 하나의 안주는 바로 두부였습니다. 지금도 두부김치라는 꾸준하게 인기를 끄는 안주가 있습니다. 지금의 두부김치는 약간의 돼지고기를 넣고 설탕 등의 감미료를 넣어서 볶은 김치와 뜨겁게 덥힌 두부를 같이 먹는 것입니다. 하지만 1960~70년대 두부는 그냥 간장에 찍어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때로는 막걸리와 함께 공짜 안주로 나왔던 김치와 함께 먹었다고 합니다. 단백질 섭취가 어려웠던 그 시절 두부는 서민들의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었습니다.

[두부틀 / 가로 52 세로 51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두부틀
두부를 만드는 틀.
맷돌에 갈아진 콩을 삶은 후 면포 등으로 걸러준 연한 고체 덩어리를 넣어서 사각형 모양으로 굳히는 데 쓰이는 틀입니다.


도토리묵과 해물파전
해물파전과 도토리묵은 대표적인 막걸리 안주입니다. 최근에는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등산이 취미인 사람들이 많은데 전국의 유명 등산로 앞에는 동동주와 도토리묵, 해물파전을 파는 음식점들이 즐비합니다.

[묵틀 / 가로 42.8 세로 19.8 높이 17.7]
묵틀
묵을 만들 때 사용하는 틀.
도토리나 메밀 등으로 묵을 끓인 후 네모난 모양으로 굳혀서 찍어내는 데 사용합니다.
네 번째 친구 사람
마지막 네 번째 친구는 당연히 사람입니다. 막걸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 하기도 합니다. 막걸리 자체가 좋아서 혼자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막걸리는 누군가와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마십니다. 막걸리는 사람 간의 소통을 원활히 해줍니다.

지금 이 시각 어딘가에서도 막걸릿잔을 기울이며 오랜 시간 서로 소통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귀중한 존재가 바로 막걸리입니다. 막걸리의 친구는 사람이며, 사람의 친구가 막걸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