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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의 기억들

막걸리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민족의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한 술입니다. 막걸리만 마시는 문인, 막걸리 두 말에 만들어진 노래, 막걸리와 영화 등 막걸리에 얽힌 기억들은 우리의 정서를 풍요롭게 해줍니다. 이번 장에서는 막걸리에 얽힌 여러 기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억 1 막걸리와 문화인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 중 유독 애주가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감수성이 풍부하기도 하고, 창작 작업의 특성상 영감을 얻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문학과 예술은 사람을 다루고 이야기하는 작업인지라 사람과의 접촉에서 소재를 얻기 마련입니다. 그런 자리를 함께한 술이 막걸리였습니다.

아동문학가 이주홍 (1906~1987)

근대 아동문학을 이끈 작가 이주홍은 어린 시절 막걸리가 익어가는 것에 대해 그의 수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서민들의 생활에서는 막걸리상만 대하고 앉으면 은정도 원정도 구별이 없습니다. 길한 일도 흉한 일도 이 술 한 잔이면 다 해소됩니다. 조상의 봉제사도 이걸로 했고, 손님의 영접도 이걸로 했고, 명절의 놀이도 이걸로 돋우었고, 씨름판도 이것이 없어서는 즐거움을 이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주홍은 막걸리가 모든 갈등을 해소하고, 우리 민족의 전통인 제사 모시기와 손님맞이, 명절놀이 등에 빠질 수 없는 술이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시인 천상병 (1930~1993)

천상병은 막걸리를 사랑한 문학가로 유명합니다.
그의 시「막걸리 찬가」에서 다음과 같이 막걸리를 칭송합니다.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 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천상병에게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밥 대신 술을 마시면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마셨던 술은 허기를 덜어줄 수 있는 막걸리였고, 다른 술에 비해 영양가도 높았기 때문에 밥 대신 마실 수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천상병에게 막걸리는 밥이자 즐거움까지 선사하는 신의 은총이었습니다.

소설가 채만식 (1902~1950)

「탁류」,「레디 메이드인생」등 풍자적 소설로 유명한 소설가 채만식(蔡萬植)은 소문난 애주가였다고 합니다. 그는 수필「불가음주 단연불가」에서 농민들의 막걸리 마시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빡빡한 막걸리를 큼직한 사발에다가 넘실넘실하게 부은 놈을 처억 들이대고는 벌컥벌컥 한입에 주욱 마신다. 그리고는 진흙 묻은 손바닥으로 쓰윽 입을 씻고 나서 풋마늘 대를 보리 고추장에 찍어 입가심을 한다. 등에 착 붙은 배가 불끈 솟고 기운도 솟는다.”

막걸리를 마시는 큼직한 사발, 진흙 묻은 손바닥, 풋마늘 대와 고추장, 그리고 시장기

당시 농민들의 애환을 막걸리란 술에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주홍, 천상병, 채만식 관련 내용은 이상희 저, 『한국의 술문화』에서 재인용한 것입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박물관 유물 수집과 막걸리

문인이나 예술가는 아니지만, 초창기 박물관들의 유물 수집에도 막걸리는 빠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한국복식사의 선구자이자 민속학자인 단국대 석주선(1911~1996) 교수는 생전 신문에 명문가들이 소장한 복식을 조사하러 다닐 때의 에피소드를 기고한 바 있습니다.

유물조사와 수집을 위해 시골의 여러 집을 방문하면 대개 “시골 사람이 뭐 알겠습니까?”라는 식으로 말문을 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럴 때 노인분들에 대한 예의 겸해서 막걸리를 한 사발씩 대접하면 그분들의 말문이 터지면서 잘 보여주지 않았던 물건들도 술술 보여주곤 했다고 합니다.

한국 최초의 사립 민속박물관인 온양민속박물관의 건립 멤버였던 신탁근 고문도 비슷한 이야기를 강의시간에 한 적이 있습니다. 온양민속박물관 건립을 위한 민속품을 수집하기 위해 농촌 마을에 들어가면 이장에게 부탁하여 방송 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유물을 가지고 오게 합니다.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유물 값을 치르고 트럭에 실어 오는 방식이 당시 수집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좋은 유물을 수집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에 집집마다 돼지고기 반 근과 막걸리 한두 되를 사서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좀 더 가치가 있는 유물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더러는 돈을 주지 않고 그냥 기증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재수집과 박물관 발전에도 막걸리가 지대한 공을 세운 셈입니다.

[출처 : KBS <한국인의 밥상> 중 막걸리를 마시는 최불암 씨]

배우 최불암 씨와 막걸리

누구에게나 배고픈 시절은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원로배우이자 국민배우인 최불암 씨는 1959년 대학을 졸업하고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아직 방송국도 없던 시절이라 연극배우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국립극단의 단원이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립극단 단원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경쟁이 치열하여 최불암 씨는 대신 국립극단의 단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일주일 내내 단역으로 출연해서 받은 돈은 친구 김순철 씨와 밤새 마실 막걸리 값 정도였다고, 그래도 막걸리를 마시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고, 마침내 최불암 씨는 존경받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당시 최불암 씨가 어려움을 버틸 수 있게 해준 막걸리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국민 배우 한 분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늙은 군인의 노래’가 수록된 가수 양희은의 음반 (출처 : soriaudio.com 음반장터)]

노랫값은 막걸리 두 말, ‘늙은 군인의 노래’

지금은 극단의 연극 기획자이자 대표로 유명한 김민기 씨가 있습니다. 그는 양희은의 노래 ‘아침이슬’을 작곡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작곡한 곡 중 유명한 노래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늙은 군인의 노래‘라는 군가입니다. 김민기 씨가 1976년 강원도 원통에서 군 복무하던 시절, 30년간 군에 몸담고 제대하는 선임상사는 자신의 30년간의 군 생활을 노래로 만들어 달라고 그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는 부탁을 받고 늙은 군인의 노래를 작사 작곡했고, 이 노래는 군부대에 빠르게 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국방부에서는 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했습니다.

잊힐 뻔했던 그의 노래는 다른 곳에서 더 유명한 곡이 됩니다. 당시 군사독재에 항거하던 학생 운동권에서 그의 노래를 ‘늙은 투사의 노래’로 개사하여 민주화 시위 때 부른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이 노래를 작곡하고 그가 선임상사에게 받은 노랫값은 막걸리 두 말이었다고 합니다. 명곡의 값치고는 너무 보잘것없었지만, 그 막걸리 값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작은 뿌리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노래가 1980년 5월 광주에서도 불려졌다는 것입니다. 시민군과 계엄군 모두에서 같은 멜로디지만 다른 가사로 불려졌다고 김민기 씨는 회상합니다. 역사의 비극, 한 가운데에 그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MBC 뉴스투데이 2020년 7월 27일]

기억 2 막걸리와 정치

대통령이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국민의 지지가 없는 강권 통치는 그리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를 위해 때때로 서민적인 행보를 보이고 이것을 언론을 통해 노출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합니다.

전통시장 방문, 대중교통 이용, 소외계층시설 방문 등이 대표적이고, 이런 와중에 종종 음식이나 음료를 먹는 장면도 연출합니다. 음식으로는 시장에서 파는 어묵이나 국수, 국밥 등이 있겠고, 음료는 단연 막걸리였습니다. 막걸리는 서민의 술로는 독보적인 존재이기에 대통령은 막걸리를 홍보 수단으로 자주 사용합니다. 막걸리는 과거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이 유권자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배다리막걸리

[배다리막걸리]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하면 막걸리를 떠올리는 중장년층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내기나 가을걷이를 하고 논두렁에 앉아서 농부들과 막걸리를 나누는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대표적인 모습이었습니다.

1966년 경기도 고양 삼송동의 ‘실비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마셨던 막걸리는 속칭 ‘박정희 막걸리’라 불리고 있습니다. 서민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은 막걸리를 매우 좋아한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막걸리는 1999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의 방북 길에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박정희 대통령이 마시던 막걸리를 가져다 달라’고 요청하여 가지고 갔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봉하쌀 생막걸리

[봉하쌀 생막걸리]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고향인 봉하마을로 돌아가서 친근한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봉하마을의 대통령 사저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주 모습을 보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서 마을 사람들과도 각별한 관계를 맺었는데, 이때 빠질 수 없었던 것이 바로 막걸리였습니다. 논두렁에 앉아서 마을 사람들과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누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지금도 자주 회자되고 있습니다.

봉하마을에서는 이 지역에서 생산된 쌀로 빚은 ‘봉하막걸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는 ‘바보주막’이라는 막걸릿집이 전국 여러 곳에 있습니다.

[1972년 공명선거 홍보영상]

막걸리와 선거판

과거 선거판에서는 막걸리가 유권자들의 표를 사는 수단으로 변질하기도 했습니다. 유세 현장에는 양조장에서 말통을 싣고 온 자전거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고, 유세가 끝나면 후보자들에게 막걸리를 얻어먹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막걸리, 고무신은 당시의 표를 사는 대표적인 물품들이었습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향상되면서 이제는 이런 매표 행위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기억 3 우리들의 취한 기억

막걸리는 도수가 약하고 부드러워서 잘 넘어가는 술입니다. 그러다 보니 취하는 줄도 모르고 마셨다가 자기도 모르게 취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막걸리 거르려다 지게미도 못 건진다”는 속담처럼 과한 음주는 본인에게 큰 손해가 되기도 합니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술에 취해 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 술이 들어가면 다양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이것을 술버릇이라고 하는데 사람마다 각각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번 장에서는 사람이 술에 취하는 유형을 살펴보겠습니다.

[SBS catch 제공]

말이 많아진다

술만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가리지 않고 다 해 버리고 맙니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횡설수설하는 때도 있으며, 허풍으로 일관하는 때도 있습니다.

노래를 부른다

술만 취하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흥겹고 유쾌하게 비교적 낮은 목소리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유형도 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노래를 열창하는 유형도 있습니다.

운다

술만 마시면 세상의 모든 슬픔을 안고 있는 것처럼 우는 사람들입니다. 이 경우에도 무슨 일에 깊이 감동하듯 눈물을 흘리면서 훌쩍훌쩍 우는 사람, 선배나 친구를 붙잡고 가슴에 깊은 한이 맺혀 있는 듯 울면서 하소연하는 사람, 설움에 겨워 참을 수 없는 듯이 대성통곡을 하는 사람 등 가지각색입니다.

잔다

술만 몇 잔 들어가면 그만 잠에 빠지는 사람들입니다. 술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술자리의 한쪽 구석이나 옆방에 기어들어 가 다리를 뻗고 잠에 빠지는 경우도 있으며, 심하면 집에 돌아가는 도중에 아무 데서나 잠이 드는 때도 있습니다.

분위기를 띄운다

술자리의 분위기를 재치있게 이끌어 참석자의 기분을 즐겁게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대체로 술에 잘 취하지 않고 강한 사람들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많은데 농담과 언변이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타

그 외 다양한 술버릇들이 있습니다. 술자리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사람, 술값을 서로 내겠다고 다투는 사람, 안주 없이 술만 마시는 사람 등이 있습니다.

[출처 : 이상희 저, 『한국의 술문화』 내용 참고]

기억 4 막걸리와 영화

영화에서는 막걸리와 대폿집은 단골소재였습니다. 주인공들이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고민을 털어 놓고 우애를 다지는 곳이 대폿집이었고, 그곳에서 마시는 술이 막걸리였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폿집과 사람들의 모습은 비록 영화이지만 근현대 역사자료라고 할만큼 생생합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막걸리와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유튜브 채널 한국고전영화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우수한 한국고전영화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전시에서 부분적으로 인용된 해당 영화는 https://www.youtube.com/channel/UCvH6u_Qzn5RQdz9W198umDw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950~60년대 영화

1950년대 영화는 현재 필름으로 남아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전후 복구가 한창이던 시기에 영화가 활발하게 제작되기가 어려웠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영화는 매우 활발하게 제작되기 시작합니다. 1960년대 영화에서는 막걸리와 대폿집이 나오지 않는 영화가 드물 정도로 자주 등장합니다. 주인공들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주된 줄거리가 진행되는 곳이 대폿집이었습니다. 당시 영화에 나오는 대폿집들은 실제 대폿집에서 촬영한 곳도 있었고 세트를 만들어 찍은 곳도 있었지만, 당시 현장을 잘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오발탄(1961) 중 선술집과 잔술판매]

오발탄 (1961)

1961년도 영화 ‘오발탄’에서는 사람들이 서서 술을 마시는 선술집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는 대중 술집의 통칭으로 선술집이란 말을 쓰지만, 실제 선술집은 서서 마신다는 의미입니다.
영화 속 선술집에서는 사발술을 파는 장면도 나옵니다. 대개 막걸리는 한 주전자씩 팔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막사발에 막걸리를 부어서 팔기도 했습니다.

[영화 김약국의 딸들(1963) 중 부둣가 주막집]

김약국의 딸들 (1963)

1963년도 영화 ‘김약국의 딸들’에서는 부둣가의 주막집과 대폿집의 중간 단계의 술집이 나옵니다. 이 영화는 1962년에 나온 박경리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영화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8) 중 기지촌]

나무들 비탈에 서다 (1968)

1968년도 영화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서는 조금은 어두운 과거라고 할 수 있는 접대부가 있는 군부대 옆 기지촌 술집의 모습이 나옵니다.

1970~80년대 영화

1970~80년대 영화에서는 그동안 자주 등장하던 막걸리와 대폿집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는 소주와 맥주를 마시는 술집이 차지합니다. 당시 영화에서 서민들은 막걸리 대신 소주를 마시고 좀 더 부유한 사람들은 맥주를 마십니다.

1970~80년대에도 막걸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이었지만 영화 속에서 막걸리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영화들은 대체로 현실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일종의 발전지향적 세계관일 수도 있고 혹은 군사정권의 경제발전 추진과 연관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누추하고 텁텁한 막걸리는 도시화, 산업화에 맞지 않는 대상이 되어 버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1970~80년대 영화로는 드물게 1975년에 나온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는 대학가의 과 대항 막걸리 마시기 대회가 나옵니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음주와 폭음이 많았습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 중 막걸리 마시기 대회]

1990~2000년대 이후 영화

1990년대는 사회가 민주화를 이루어내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1990년대에는 한국 영화도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 낸 시기입니다. 임권택, 강제규 감독 등 여러 거장이 나타나 할리우드영화 못지않은 흥행을 이루기도 하고, 우리 문화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영화들이 나타납니다. 이 시기부터는 다시 막걸리가 영화 속에 등장합니다.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1990) 중 비닐 막걸리병]

우묵배미의 사랑 (1990)

1990년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에서는 마당에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막걸리가 담긴 용기가 1960년대의 양은 주전자가 아닌 비닐 막걸리병인 것도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영화 서편제(1993) 중 대폿집]

서편제 (1993)

1993년 영화 ‘서편제’는 흥행과 작품성 모두를 이루어낸 한국 영화의 걸작 중 하나입니다. 서편제 이후부터 한국 영화에서도 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작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서편제에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대폿집과 주막의 모습이 비교적 생생하게 나옵니다.

[드라마 모래시계(1996) 중 학사주점 막걸리]

모래시계 (1996)

영화는 아니지만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SBS 드라마 ‘모래시계(1996)’에서는 대학가 학사주점이 나옵니다.

주인공 박상원 씨는 운동권 학생과 막걸릿잔을 기울이며 논쟁을 벌입니다. 당시 대학가의 운동권과 비운동권 학생들의 시각차를 보이는 장면입니다. 그러던 중 다른 테이블에서는 고현정 씨가 여자 후배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여자 후배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이것을 못마땅하게 본 운동권 학생 한 명이 다가와 여자 후배의 따귀를 때립니다. 고현정 씨는 따귀를 때린 남자의 따귀를 때립니다.

당시만 해도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해지지 않은 시기였기에, 민주화 운동을 하는 운동권 남학생들에게는 남녀차별적인 가부장적인 의식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아직 민주주의가 나갈 일이 멀었다는 것을 대학가 학사주점의 막걸리 술자리를 통해서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영화 돌아온다(2018)]

돌아온다 (2018)

2018년에 개봉한 영화 ‘돌아온다’는 막걸리를 소재로 만든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여기에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골에서 막걸릿집을 운영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연극으로도 제작되어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는 주인공 김태리 씨가 막걸리를 만들어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