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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의 공간들

막걸리는 다양한 공간에서 소비되어왔습니다. 전통사회에서 막걸리는 주로 주막에서 소비되었습니다. 당시 주막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막걸리를 소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요한 소통의 공간이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막걸리는 대폿집이라는 대중 술집에서 주로 소비되었습니다. 대폿집은 서서 막걸리를 마시는 선술집, 잔에 막걸리를 따라서 파는 잔술집 등이 있었습니다. 이후 막걸리는 대학가의 학사주점, 토속적인 분위기의 민속주점 등에서 꾸준히 소비되었고, 등산길에 마시는 막걸리는 별미가 되었습니다. 막걸리가 소비되는 여러 공간을 살펴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공간 1 주막

주막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만남의 장이었습니다. 주막은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 나루터 등에 있었고, 음식과 술 그리고 숙박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주막은 일반 백성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으로 그곳에서 팔던 술은 주로 막걸리였습니다. 당시 주막에서는 막걸리를 직접 담가서 팔았다고 합니다.

[단원 풍속도첩 중 주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영화 속 주막

현재 조선 시대 주막이 남아있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주막의 모습은 대개 김홍도의 풍속도첩 등의 조선 시대 풍속화에 남은 것을 토대로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재현한 것들입니다. 영화 속에서 주막의 모습이 비교적 사실적으로 잘 묘사된 영화들이 있습니다. 1967년에 나온 영화 ‘메밀꽃 필 무렵’과 1963년에 나온 영화 ‘강화도령’에서는 조선 시대 주막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주막의 여주인 주모, 심부름하는 사람, 마루나 마당에 앉아 술과 음식을 먹는 사람 등 조선 시대 주막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화 ‘메밀꽃 필 무렵’(1967) 중 주막]

[영화 ‘강화도령’(1963) 중 주막]

주막의 표식

지금은 상점이나 음식점에 간판이 있어서 상호와 업태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주막은 이런 간판이 없었고 주막을 나타내는 표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막을 나타내는 표식은 술을 거를 때 사용하는 용수와 비 올 때 착용하는 고깔 형태의 모자인 갈모가 있었습니다.

[김진호 필, 「농촌생활도」중 주막에 걸린 용수]
(소장처 미상)

[이형록 필, 「겨울풍경」중 주막에 걸린 갈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용수

크기 : 길이 52 지름 25
시대 : 광복 이후
설명 : 술이나 장을 거르는 데 사용되는 도구. 술을 거르는 데 사용되었던 관계로 주막을 나타내는 표식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갈모

크기 : 길이 38
시대 : 조선 후기
설명 : 비가 올 때 갓이 젖는 것을 막기 위해 갓 위에 씌우는 모자. 한지에 여러 번 기름을 먹여서 만듭니다.

공간 2 노동의 현장

막걸리가 옛날부터 노동의 현장에서 우리와 같이했던 것을 여러 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조선 시대 풍속화에도 일하는 농부들이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빈번히 등장합니다. 막걸리가 농주 혹은 노동주라 불리는 것은 노동의 현장에서 자주 마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점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공간 3

[영화 ‘구름은 흘러도’(1959) 중 집에서 막걸리 마시기]

집은 막걸리가 소비되는 주요한 공간이었습니다. 현재는 가게에서 술을 사다 마시지만, 전통사회에서는 집에서 직접 담가서 마셨고,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동네의 양조장에 주문해서 배달을 시키거나 주전자를 들고 가서 받아다가 마시곤 했습니다. 막걸리와 양조장이라고 하면 지금도 어른 심부름으로 양조장에 술을 받으러 간 것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공간 4 대폿집

[출처 : 이상희 저, 「한국의 술문화」]

대폿집은 양조장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막걸리 술집입니다. 대포란 뜻은 사발과 같이 큰 술잔에 마시는 술을 뜻합니다. 사발로 마실 수 있는 술은 막걸리밖에 없기 때문에, 대포는 막걸리를 뜻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대개 대폿집 앞에는 왕대포란 문구가 적혀 있는데, 왕대포란 큰 사발에 담긴 막걸리를 뜻합니다. 대폿집들은 양조장에서 술을 공급받아 손님들에게 팔았습니다.

이런 대폿집 중에도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술을 자리에 앉아서 마시지 않고 서서 마시는 선술집, 주전자나 병에 담긴 술을 파는 것이 아닌 사발에 담긴 술을 파는 잔술집 등이 있었습니다.

[인하의 집 내부]

[인하의 집 대표메뉴 - 인천 소성주와 삼치구이]

대폿집 탐방 ‘동인천역 참치골목 인하의 집’

인천광역시 동인천역 인근에 있는 ‘인하의 집’은 1970년대부터 영업을 했던 오래된 대폿집입니다. 이 집은 본래 양조장 건물에 같이 있었습니다. 막걸리를 팔고 안주로는 당시 인천항을 통해 값싸게 수입되었던 삼치를 구워서 팔았다고 합니다. ‘인하의 집’이 생긴 이후 주변에는 이런저런 막걸릿집들이 생기고 저마다 삼치를 구워서 팔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이 골목을 삼치구이 골목이라고 부릅니다. 360º 가상현실 영상을 통해 ‘인하의 집’을 살펴보겠습니다.

인하의 집 VR 영상 보기

‘인하의 집’은 대폿집으로는 보기 드물게 1970년대 개업하던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조명, 탁자 등은 최근에 교체된 것이지만 바닥, 벽, 천장, 주방, 화장실 등은 개업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합니다. 1970년대부터 팔았던 인천 막걸리와 삼치구이의 맛도 그대로입니다. 지금도 오래된 대폿집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인하의 집’은 1970년대 대폿집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하의 집’은 지금도 저녁 시간이면 사람들로 붐비는 대폿집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인하의 집 - 김연훈 사장님 인터뷰]

김연훈 사장님 ‘나와 인하의 집’

김연훈 사장은 ‘인하의 집’을 2009년도에 인수해서 현재까지 10년 이상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싱싱한 삼치를 구워 막걸리와 함께 팔면서 살맛 나는 인생을 느낀다는 김연훈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인하의 집 - 단골 오명섭 씨 인터뷰]

오명섭 씨 ‘인하의 집 1등 단골손님’

오명섭 씨는 ‘인하의 집’ 단골손님입니다. 오랜기간 인천지역에서 사셨다는 오명섭 씨에게 막걸리는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 같은 술이라고 합니다. 오명섭 씨와 막걸리, 그리고 ‘인하의 집’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공간 5 민속주점

[롯데월드 민속주점 소개(1982)]

민속주점은 막걸리와 대폿집의 쇠퇴기인 1980년대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주점입니다. 특히, 1982년 롯데월드에 민속주점 저잣거리가 생기면서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롯데월드 민속주점 저잣거리는 현재도 성업 중입니다.

[1981년 4월 9일 동아일보 민속주점 광고]

대폿집은 자생적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생겼지만, 민속주점은 서울에서 생기기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져나간 것이 특징입니다. 민속주점에서는 막걸리, 동동주, 파전 등을 판매했습니다.
실내 인테리어는 여러 가지 민속품으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민속주점 창업이 붐을 이루면서 골동품 시장에서 민속품의 가격도 많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공간 6 학사주점

학사주점은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유행하던 술집으로, 주로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술집이었습니다. 학사주점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해 저렴한 술값과 안줏값이 특징이었습니다. 학사주점이라고 하면 운동권 학생들의 문화와 분위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막걸리 한잔을 마시며 사회 비판을 하면서 서로 토론하는 공간이 학사주점이었다고 합니다.

학사주점 내부에는 빼곡하게 낙서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냥 낙서부터 시작해서 정치적인 메시지, 사랑의 메시지, 우정의 메시지 등 다양한 세상의 일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학사주점에서 나오는 음악은 주로 정태춘, 박은옥 씨의 노래나 양희은, 김민기 씨의 노래 등 운동권 학생들이 즐겨 듣는 음악들이 주로 나왔으며,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이 같은 모습의 학사주점은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대학가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판자집 내부]

신촌의 20년 된 학사주점 ‘판자집’

‘판자집’은 연세대학교 앞 신촌거리에 있는 학사주점입니다. 1999년부터 영업을 시작하여 올해로 20년이나 된 주점입니다. 옛날에는 이보다 더 오래된 학사주점들도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 없어져 버렸습니다. ‘판자집’은 본래 연세대 앞 창천교회 골목에 있다가 현재의 자리로 이사했다고 하는데, 이사하면서 벽체, 테이블, 손님들이 쓴 낙서 등도 가져왔다고 합니다. 오래된 분위기 때문에 영화에도 자주 나온 명소입니다. 막걸리와 함께 해물파전, 두부김치 등 대중적인 막걸리 안주를 팔고 있습니다. 360º 가상현실을 통해서 ‘판자집’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판자집 VR 영상 보기

[판자집 - 김환준 사장님 인터뷰]

판자집 ‘김환준 사장님’

김환준 사장님은 1999년 ‘판자집’을 개업한 이후 현재까지 이 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던 ‘판자집’은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어 다시 북적이는 ‘판자집’이 되길 바란다는 김환준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공간7 시장 막걸릿집

[전남 나주군 인근의 시장의 막걸릿집]

시장은 사람과 물건이 모이는 곳입니다. 시장에서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팔고, 인간적인 친분도 이루어집니다. 오랜만에 장터에서 만난 친구들이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시장은 막걸리의 주요한 소비 공간이었습니다. 현재 도시의 시장들은 상설시장으로 매일 열리는 일종의 상점들과 같지만, 예전의 시장은 오일장으로 장이 서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지방에는 점점 사라져 가지만 오일장이 열리는 곳들이 있습니다.

[1984년 충북 청주 소시장 막걸릿집]

특정한 물건이 거래되는 시장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시장입니다. 경상북도 예안, 충청북도 청주, 경기도 수원 등지에서 큰 소시장이 섰습니다. 소는 농가의 매우 귀한 재산이었고 소를 판 돈으로 자식들 대학 공부도 시킬 정도로 큰 돈이 오가는 곳이 소시장이었습니다. 솟값을 잘 받은 기분에 막걸리 한잔이 빠질 수 없었습니다. 소시장 한쪽에는 막걸릿판이 벌어지기 마련이었고 흥겨운 기분에 서로서로 막걸리를 나누었습니다.